2008. 11. 18. 15:56

dazed korea #08. 12 art without limits



함께 사는 남자가 무릎 꿇고 쪼그려 앉아있는 제 새우등에 대고 말했습니다. “지금 벌 서냐?” 다리에 막 쥐가 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시끄러. 원래 창작은 원래 고통스러운 거라고.” 귀찮게 굴지 말고 볼 일 보시라는 의도를 담아 뒤통수로 대꾸했죠. 실은 누군가 지켜본다는 사실이 좀 민망했던 겁니다. 두 달 전 에디터스 노트에 잠깐 언급했듯이, <데이즈드>를 만드는 내내 아티스트에의 열망에 시달리곤 합니다. ‘시간만 남아돈다면 이런 아트쯤은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교만도 생겼었죠. 그리하여 ‘ART WITHOUT LIMITS’라는 이 달 주제에 맞춰 한번 시도해봤습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아무나 하는 아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가 증명해보였다는 데 의의를 두겠습니다. 하지만 다행이지 않습니까? 제가 그림까지 잘 그렸다면, 아트 신은 ‘새로운 늙다리 신예의 등장’으로 잔뜩 긴장해야 했을 테고 잡지계는 팔방미인 에디터 한 명을 잃는 치명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했을 테니까요. 하하. 진담 조금 버무린 99% 농담인 거 아시죠?

유머러스한 사람이 좋습니다. 개그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 난무하는 그런 유치한 말장난 말고, 조금 더 섹시하고 고차원적인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 말이죠. 지켜봐야 할 노릇이지만, 미국 대선 당선자 버락 오바마는 그런 면에서 호감이 갑니다. 뉴욕에서 열린 얼스미스 자선행사 연설을 통해 그는 이런 어록을 남겼죠. “내 강점은 겸손함이고 약점은 지나치게 멋지다는 것이다.” 이런 세련된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라도 기꺼이 한 표 날렸을 겁니다. 부디 미국 대다수 국민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 잘생긴 흑인 대통령이 집권 내내 증명해 보이길 오지랖 넓게 기원해 봅니다.

유머러스한 사람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이 달부터 새로 합류하게 된 박인영 피처 디렉터입니다. <세븐틴> <아레나> 등을 거쳐 <어퓨> 피처 디렉터로 활동했던 그녀는, 미모와 지성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저보다 월등한데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는 에너제틱한 기자입니다. 그녀 탓에 눈가 주름이 몇 개 더해졌지만 또 그녀 덕에 <데이즈드>가 내용면으로나 구성면으로나 보다 컬러풀해졌습니다. 별다른 부연 없이도 이번 호 지면들의 소소한 변화를 통해 그녀의 영향력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08년의 마지막 호입니다. 연말 결산이나 크리스마스, 송년회 파티 등을 위한 정보는 지면이 아까워 생략했습니다. 그런 이슈를 원하신다면 다른 잡지들을 권해 드립니다. 어느 잡지 하나 빼놓지 않고 정성껐 다뤘을 테니, 무엇을 집으시건 큰 불편 없으실 겝니다. 대신 12월에 어울리는 ‘풍성한’이라는 수식어는 <데이즈드>가 지속적으로 시선을 두는 ‘패션+아트’에서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진담인데, 이번 달 <데이즈드>는 정말 근사하네요. 포토팀, 아트팀, 편집팀 그리고 우리의 모든 조력자 여러분, 당신들은 정말 ‘Best of best’ 입니다!